아는 만큼 보인다_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유홍준 지음 ; K-컬처의 원류, 검이불루 화이불치 (2024)

Book 칼럼

아는 만큼 보인다_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유홍준 지음 ; K-컬처의 원류, 검이불루 화이불치

Wiky 2024. 10. 7.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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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님의 '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1993년에 첫 권이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 문화유산 답사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방대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다이제스트 엑기스 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책을 찾아보니,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3년 12월 23일에 완독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제가 산 책이 초판 14쇄 본이니, 1993년 당시 얼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짐작케 합니다.

초판에 나와 있는 유홍준 교수님의 사진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초판 14쇄 본에 있는

작가 소개 글입니다.

이 책의 작가 소개 글에 의하면, 이후 문화재청장 역임, 명지대 미술사학과를 정년 퇴임하시고 지금은 석좌교수로 있다고 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1993년 1권 이후, 국내 편 12권, 일본 편 5권, 중국 편 3권이 나와 있으니, 1993년 이후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책의 목차입니다. 2부의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14개 장소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

2부 검이불루 화이불치

책의 목차입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입니다.

원래도 이 시리즈는 명문장이 많아,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글들입니다.

이 책의 집필은 1권 서문에서 밝혔듯이 미술사가로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을 연구하면서 느낀 것을 동시대를 살고 있는 분들에게 알려드린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화유산의 내재적 가치는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로 관심을 이끌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 문인의 말을 이끌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며 독자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호소했던 것이다.

그런데 1권을 펴내자마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1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며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출판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현장 답사로 이어졌다. '남도답사 일번지'로 쓴 강진과 해남은 그해 여름에만 50만 명이 다녀갔다. 그로 인해 나는 명예 강진군민증을 수여받았다. 실로 뜻밖의 열풍이었고 사회적 현상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4 (/416, 책을 펴내며)

이 책은 지역과 시대와 문화유산의 성격을 고려하여 14편의 글을 선별하여 실었다. 기존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쓰였다. 하나는 그 지역의 자연 풍광과 역사 그리고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모습을 기행문 형식으로 쓴 국토예찬이고 또 하나는 움직일 수 없는 문화유산의 명작을 해설한 것이다. 이에 제1부는 '사랑하면 알게 된다'로, 제2부는 '검이불루 화이불치'로 제목을 달고 각기 7편씩 실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뜻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백제본기」온조왕 15년(기원전4)에 실려 있으며 정도전이 경복궁을 지으면서 그대로 인용했다. 이 구절은 백제의 미이면서 조선의 미이면서 한국의 미의 특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6 (/416, 책을 펴내며)

그러나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터,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그리고 달마산 미황사와 땅끝(土末)에 이르는 이 답삿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그 표현에서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일번지'라고 불렀을 답사의 진수처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린 역사의 체취가 살아있으며, 이름 없는 도공, 이름 없는 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일번지'라는 제목을 내걸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14 (/416, 영암 도갑사-강진 무위사)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 지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지금 말한 그 졸업생은 이제 들판의 이미지에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남도의 들판을 시각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산과 들 그 자체뿐 아니라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는 시각에서도 정서 반응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답사와 여행이 중요하고 매력적인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15 (/416, 영암 도갑사-강진 무위사)

<관음32응신도>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 보문품(普門品)」에서 관세음보살이 32가지로 변신하여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낸 것이다. 중앙에 관세음보살을 절벽 위에 편안히 앉아 있는 유희좌(遊戱座)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아래로는 무수한 산봉우리가 펼쳐지면서 중생이 도적을 만났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등 때마다 관음의 도움을 받는 그림이 동시 축약으로 담겨있다. 각 장면은 바위, 소나무, 전각, 인물 들로 이루어진 낱폭의 산수인물도라 할 만큼 회화성이 아주 높은데 바위에는 경전의 내용을 마치 암각 글씨인 양 금물로 써넣어 각 장면의 의미를 명확히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P20 (/416, 영암 도갑사-강진 무위사)

내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해도 이 한적한 절집의 분위기에 척 어울리는 저 소담하고 단정한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을 반도 전하지 못할 것 같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극락보전은 나에게 "너도 인생을 가꾸려면 내 모습처럼 되어보렴"하는 조용한 충언을 들려주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 P27 (/416, 영암 도갑사-강진 무위사)

강당 누마루에 올라앉으면 양옆으로는 한 단 아래로 동재와 서재가 지붕머리까지 드러내면서 시립하듯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동재는 일신재(日新齋), 서재는 직방재(直方齋)라 하여 답사객들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인데 그 뜻을 알 듯 모를 듯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한번은 어떤 스님이 내게 와서 "직방이라니? 직방(바로) 알려준다는 뜻인가요?"라며 농을 섞어 묻는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일신이란 『대학』의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로 날로 새롭겠거든 날로 날로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는 뜻이다. 직방이란 『주역』「곤괘」의 "경이직내(敬而直內) 의이방외(義而方外)"에서 나온 말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내면(마음)을 곧게 하고, 올바름으로 외면(행동)을 가지런히 한다"에서 나왔다. 학생들은 모름지기 이 두 경구를 아침저녁으로 간직하여 올바르고 새로워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22 (/416, 안동 병산서원)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세상엔 그런 식으로 상수(上手) 위에 또 상수가 있는 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50 (/416, 안동 병산서원)

이 천연스러움의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생각해 본다. 양산보는 건축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느 조원 설계가보다 탁월한 구상과 섬세한 디자인을 보여준 슬기와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이것을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의 위대한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대부는 군자로서 살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확고한 도덕률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지향한 바는 전문인·기능인이 아니라 총체적 지식인으로서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사람이었으며, 그리하여 그 지식으로 세상을 경륜하고, 그 안목으로 시를 짓고 거문고를 뜯고 글씨를 쓰고 집을 짓고 사랑방을 디자인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전쟁조차도 전문성보다는 총체성에 입각하여 대처했다. 우리 시대의 전문인들이 잃어버린 바로 그 총체성을 우리는 이곳 소쇄원에서 배워야 마땅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64 (/416, 담양 소쇄원·옛 정자와 원림)

생각건대, 누정을 수리하는 것은 한 고을의 수령 된 자의 마지막 일거리(末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고 못됨은 실로 다스림, 즉 세도(世道)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세도가 일어나고 기욺이 있으매 민생의 편안함과 곤궁함이 같지 않고 누정의 잘되고 못됨이 이에 따르니, 하나의 누정이 제대로 세워졌는가 쓰러져가는가를 보면 그 고을이 편안한가 곤궁한가를 알 수 있고 한 고을의 상태를 보면 세도가 일어나는가 기우는가를 알 수 있을지니 어찌 서로 관계됨이 깊지 않겠는가.

지금 이 누각이 수십 년 꺾이고 썪다가 정군이 정사하는 날에 이르러 중수하여 새롭게 했으니, 세도가 수십 년 전과 다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 정군과 같은 이는 세도를 좇아 다스림을 하는 이라 할만하다. (…)

또 계산(鷄山)의 빼어난 경치와 누각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청풍(淸風)이라는 호칭과 한벽(寒碧)이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뼈가 서늘하게 하리라.

(1406년 하륜(河崙 1347~1416)의 한벽루기(寒碧樓記))

아는 만큼 보인다 P100 (/416, 청풍 한벽루)

해마다 가을이면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외국의 박물관 큐레이터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한국미술 큐레이터 워크숍을 연다. 이 프로그램에 줄곧 참여해온 서양의 한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단숨에 정자를 꼽았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표정이라고 했다.

정자는 누마루가 있는 열린 공간으로 2층이면 누각, 단층이면 정자라 불리며 이를 합쳐 누정(樓亭)이라 하는데 흔히 정자로 통한다. 정자는 사찰·서원·저택·마을마다 세워졌지만 그중에서도 관아에서 고을의 랜드마크로 세운 것이 규모도 제법 당당하고 생기기도 잘생겼다. 정자는 생김새보다 자리앉음새가 중요하다. 그래서 강변에 세운 관아의 정자에 명작이 많다.

진주 남강의 촉석루, 밀양 밀양의 영남루, 청풍 남한강의 한벽루 같은 3대 정자 외에도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 의주 압록강의 통군정 등이 예부터 이름 높다.

정자는 고을 사람들의 만남과 휴식의 공간이면서 나그네의 쉼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자에는 여기에 오른 문인 묵객들이 읊은 좋은 시들을 현판으로 새겨 걸어놓고 그 연륜과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국문학에서는 '누정문학'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정자의 미학은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의 정자는 유럽의 성채처럼 위풍당당하여 대단히 권위적이고, 일본의 정자는 정원의 다실로서 건축적 장식성이 강한 데 반하여 한국의 정자는 삶과 유리되지 않은 생활 속의 공간으로 세워졌다. 그 친숙함이야말로 우리나라 정자의 미학이자 한국미의 특질이기도 하다.

일찍이 일본인 민예학자 야니가 무네요시는 한·중·일 3국의 미술적 특성을 비교하면서 중국미술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미술은 색채 감각이 뛰어나며, 한국미술은 선이 아름답다며 중국 도자기는 권위적이고, 일본 도자기는 명랑하고, 한국 도자기는 친숙감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국 도자기는 멀리서 감상하고 싶어지고, 일본 도자기는 곁에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손으로 어루만져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런 친숙감이 우리나라 정자에도 그대로 어려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104 (/416, 청풍 한벽루)

최재현 교수가 선림원터를 나와 함께 거닐면서 나처럼 문화재에 안목을 갖고 싶다며 그 비결이 있느냐고 묻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직 유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뿐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조선 정조시대에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라는 문인이 당대의 최고 가는 수장가였던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수장품에 붙인 글을 내 나름으로 각색하여 만든 문장도 이야기해 주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도자기를 전공하는 윤용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박물관 진열실에 있는 도자기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때는 도자기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도 당신처럼 한때는 세상을 살았던 시절이 있소." 어린아이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남들은 몰라도 그 에미와 애비만은 다 알아듣고 젖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준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최재현 교수가 사경을 헤매느라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입모양만 보고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던 분은 부인 한 분뿐이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164 (/416, 설악산 진전사터·선림원터)

* 유한준의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이며, 이는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165 (/416, 설악산 진전사터·선림원터)

그러나 나는 잎도 열매도 없는 마른 가지의 사과나무를 무한대로 사랑하고 그런 이미지의 인간이 되기를 동경한다.

사과나무의 줄기는 직선으로 뻗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사과가 잘 열린다. 한 줄기에 수십 개씩 달리는 열매의 하중을 견디려면 줄기는 굵고 곧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과나무는 운동선수의 팔뚝처럼 굳세고 힘있어 보인다. 곧게 뻗어 오른 사과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보면 대지에 굳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역기를 드는 역도 선수의 용틀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사과나무의 힘은 꽃이 필 때도 열매를 맺을 때도 아닌 마른 줄기의 늦가을이 제격이다.

내 사랑하는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그 자체로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여러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뿌리에서 나온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 되었다.

"세상엔 느티나무 뽑을 장사는 있어도 사과나무 뽑을 장사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 P209 (/416, 영주 부석사)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웅대한 스케일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9품 계단의 정연한 질서를 관통하여 올랐기 때문일까. 안양루의 전망은 홀연히 심신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지루한 장마 끝의 햇살인들 이처럼 밝고 맑을 수 있겠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 P214 (/416, 영주 부석사)

* 첫 번째 책이 나오고 거의 1년이 되었을 때 당시 칠순이 넘으셨던 나의 어머님께서는 어느 날 "얘야, 에미도 네 책 표지에 나오는 감은사탑 좀 보여 주렴" 하고 어렵게 부탁하셨다. 나는 순간 낯모르는 사람은 누구든 답사를 안내하면서 정작 부모님은 한번 모시고 간 일이 없는 불효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감은사에 갔다.

감은사터 조망대에 올라가서 오래도록 둘러보시고 나서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이 있었다.

"얘야, 이런 게 네가 책에서 폐사지라고 한 거니?"

"예, 어머니도 많이 기억하시네요."

"아니다. 그 말이 하도 신기해서다."

"그러면 뭐라고 해요?"

"우린 이런 걸 보면 그냥 망한 절이라고만 그랬지. 망한 절을 망했다고 하지 않고 거기서 좋은 걸 찾아 말했으니 네가 복 받은 건다. 아무쪼록 그렇게 살아라."

감은사탑은 석양의 실루엣이 정말 아름답다. 토함산으로 넘어간 태양이 홍채를 뿌려 배경을 은은하게 물들일 때 감은사탑은 장엄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 P253 (/416, 경주 대왕암·감은사터)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신 사당으로 일종의 신전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덤(墓)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을 지어 혼을 섬긴다. 후손들은 사당에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며 자신의 실존적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다.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곧 왕이 왕일 수 있는 근거였다.

이 땅에 유교가 들어온 이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종묘가 세워졌다. 그러나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의 종묘는 그것들과 차원을 달리했다. 조선왕조는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규범을 유교 경전에 따라 조직했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서는 도읍(궁궐)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社稷)을 세우라고 했다. 이를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한다.

사직에서 사(社)는 토지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즉 백성(인간)들의 생존 토대를 관장하는 신을 받들어 모신 것이다. 한편 종묘는 왕의 선조들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그래서 옛 임금들이 나라에 혼란이 닥치면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고…""종사(宗社)를 어찌하려고…"라며 위기감을 표하곤 했던 것이다. 좌묘우사에서 왼쪽이 더 상위의 개념이니 그중 종묘를 더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P355 (/416, 서울 종묘)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新作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그러고 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조선시대 선비 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 데 '검이불루'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고, 규방 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 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는 이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하고 발전시켜 일상에서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미학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P407 (/416, 서울 창덕궁)

책의 분량에 주눅 들어서 작년 10월에 책을 산 후 거의 1년 만에 완독을 했습니다.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인데, 어떤 책 들이든 전체 분량의 반까지 가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반까지 가고 나면 그다음은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책의 앞부분에 있는 이 문구가 우리나라 문화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이자 정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앞 속지에 있는 작가님의 글씨입니다.

예전에도 그랬는데, 이런 문화답사기를 읽고 나면 한 번쯤은 책에 소개된 장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운신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더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기 전에 국토 기행을 해 볼 생각입니다.

고적한 가을날,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여행했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다이제스트 판, '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리뷰였습니다.

/.

2023년 6월 9일 발행된 초판 1쇄 본입니다.

책의 뒷날개에 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소개입니다.

책의 뒤표지의 글입니다.

책의 띠지의 내용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저자 유홍준 출판 창비 발매 2023.06.09.

나만의 테마 마스터 위젯 미션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저작자 명시 필수영리적 사용 불가내용 변경 불가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내용 변경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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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Corie Satter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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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Corie Satterfield

Birthday: 199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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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My name is Corie Satterfield, I am a fancy, perfect, spotless, quaint, fantastic, funny, lucky person who loves writing and wants to share my knowledge and understanding with you.